회피성 인격장애는 친밀한 대인 관계를 원하면서도 상대에게 거부 당하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을 피하는 인격장애 입니다.

회피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게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두렵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행동이 서투르며 긴장되어 있습니다.

사회공포증과 비슷한 특서을 나타내기도 해서 두가지 모두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상황에서의 공포와 대인관계 

불안정성이 후기 아동기 또는 초기 청소년기부터 나타났다면 사회공포증보다 회피성 인격장애를 더 알맞습니다.

회피성 인격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신이 매력이 없고 열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회공포증을 겪는 사람은 

사회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엔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반면, 회피성 인격장애의 경우는 그런 사고가 잘 일어나

지 않고 많은 상황에서 열등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 사회공포증과 달리 가까운 상대에게도 감정을 드러내는

걸 꺼립니다. 편의점 직원, 식당 종업원 등 일회성으로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지나치게 신경 쓰기도 합니다.


회피성 인격장애를 겪은 사람은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공포감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직업적 측면에서 타인들과 접촉을 피하려

는 경향을 보입니다. 의존성 인격장애 또는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있는 경우도 타인으로부터의 비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

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 둘과의 차이점은 예를 들면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경우 비판에 대해 거부하고 가신의 결점을 부인하는 

쪽으로 반응하는 반면, 회피성 인격장애는 비판을 쉽게 인정하고 자신이 멍청하다거나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반응합니

다. 또한 분열성 성격장애는 타인니 지신이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걱정하는 경향이 없는 반면, 회피성 인격장애는 이런 걱정

이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두 인격장애 모두 내향성이고 대인 관계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으나, 분열성 인격장애를 겪는 사람은 차갑고 긍정적인 정서의 

정도가 낮은 반면에, 회피성 인격장애를 겪는 사람에게서는 따뜻함과 긍정적인 정서가 어느 정도 나타납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때 이런 특징이 억제되어 있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회피성 인격장애의 특징입니다.




2018/11/08 - [철학이야기/심리학이야기] - 도박중독이란 도박이란

2018/10/07 - [철학이야기/심리학이야기] - 우울증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

2018/10/17 - [철학이야기/심리학이야기] - 교육심리학이란 교육심리학의 연구방법



도박이란 '우연에 의해 주도는 불확실한 사건의 결과에 금전적 내기를 거는 것' 을 말한다. 어쩌다가 한 번 도박으르 재미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녀가 도박을 통해 돈을 벌겠다고 하면 그것을 권하는 부모는 없다.

복권을 사면 1등이 받는 금액이 수십억이라도 워낙 확률이 낮기 때문에 실제로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을 삽니다.  분명히 손해가 되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게 됩니다.

도박이라는게 무엇인지 왜 이런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무리한 도박은 자신의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도 이토록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도박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도박이라는 행위에 중독 되었기 때문입니다.

술이나 마약같은 물질에 중독되는것과 마찬가지로 도박, 성행위, 쇼핑, 인터넷게임 등의 행위에도 중독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도박중독은 지속적인 도박행위로 인해 개인적, 사회적, 직업적 측면에서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면서도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병적도박' 이라고 불리며 심각한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도박 충동에 저항을 못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1980년 충동조절장애 중 하나였으나, 2013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정신의학 진단체계에 '중독성 질환' 하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도박중독자는 도박에 대해 계속 집착을 보이며,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들은 도박이 정상적으로 즐기는 도박과 다른 대표적인 특징은 물질중독과 마찬가지로 내성과 금단 증상을 나타냅니다.

내성이란 같은 정도의 즐거움과 흥분을 얻기 위해서는 판돈을 점점 늘려나가거나, 도박에 참여하는 횟수나 정도가 점점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단 증상이 생겨서 도박을 조절하거나 줄이거나, 중지시키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괴롭고 짜증나고 반복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또 도박을 하게 되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박행위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도박중독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가능한 빨리 정신건강 전문의와 상담을 받아야합니다.

많은 도박자들이 자신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도박을 즐기는 '사교성 도박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도박 중독자이고 인생이 파탄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전 생각에 도박을 계속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박중독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 경제적 손실을 고려했을때, 도박 중독자들을 어떻게 도울거인지 구체적인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용이란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용의 요지는 요순 임금의 천하 통치의 정신이 도통인데,  이 도통의 요체는 중용에 있으므로 이를 터득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 욕심과 도덕적본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적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덕적 본성이 없을 수없는데, 두 마음을 다스리는 이치가 중용입니다.


도덕적 본성상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인간적 욕심이 매번 도덕적 본성의 명을 듣게 하는 것이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이를 위하여 성, 도, 교라는 개념으로 천도와 인도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효도와 자식 사랑, 형제간의 우애, 가정의 화목,이웃사랑의 도입니다.  교는 도를 마름질하는 것인데, 도를 구체화한 교훈, 예절, 법칙,제도 등으로 구체화된 것을 말합니다.


중용의 주요내용은 성, 중용, 중화입니다.  성은 진실무망이고, 중용운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입니다.  중화는 실천적 측면에서 중을 설명한 것입니다. 희노애락이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중이라고 하며, 일어나고 모두 절도에 맞는것을 화라고 합니다


공자의 사상

공자의 중심 사상은 그가 제자들과 나눈 문답 형식의 언행집인 논어에 들어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인간이 취하여야 할 모든 궁극적 지향점은 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지덕, 지선의 뜻을 지니고 있는 인도주의 로서 정치적으로는 명분을 바르게 하고,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가 본분을 지킴으로써 국가와 가정의 질서를 유지시키며, 사회적으로는 자기의 도리를 다하고, 남을 부축하며,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 강악 하지 않는 것을 비롯한 제덕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하기 싫은 것,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다른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강악이라 하여 악으로 간주했습니다.

인을 지향하고 예에 정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소인이자 악인으로서 군자가 덕을 생각할 때 소인은 이익만을 생각하며, 악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했합니다.  또한,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되 끼리끼리하지 않고 소인은 끼리끼리하되 두루두루 소통하지 않는다 라고 설파하였습니다.


인간은 성인과 군장 외에도 인간적으로 범인과 소인, 악인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은 성인만이 능히 이룰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외경할 만큼 이루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예에 엄격함여 절도가 있었으며, 성품은 엄숙하고 온화하고 원만하였습니다.  제자를 교육함에 있어서는 각인의 능력과 이해 정도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성품을 계발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사상이 현실적이고 현세적이었으며, 실용적, 합리적, 상식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공자가 활동했던 시기의 은자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습니다.  장자에서 도척이 공자에게 하는 말이나 논어 에서 노인이 공자에 대해서 팔다리고 부지런히 일도 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선생님이란 말이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생산활동을 도외시하고 결과보다는 뜻을 고려하는 태도에 회의적이었던 의견들이 당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은 법가에서도 드러납니다.


공자의 정치관

공자가 교육에 있어 목표로 삼은 것은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층 인사로서 인격의 완성체인 이른바 군자의 양성이었습니다. 군자란 원래는 한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는 능력과 자격을 겸비한 귀족계층의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으나, 공자는 그러한 지위에 어울리는 도적적 인격, 정치적 능력, 인문적 교양을 지닌 사람으로 뜻을 확대하여 이러한 인재의 육성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공자는 군자의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위한 경전으로 춘추시대 이전의 여러나라 민요나 주나라의 조정에서 의식이나 제가를 지낼 때 ㅂ르던 가요 등을 편집한 시경과 주나라가 천명을 받아 왕조를 창시할 시기의 왕조의 기록류를 정리한 서경 등 종래의 전통을익히고 이어가는 데 마땅한 서책들을 교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한편 군자 양성을 목표로 한 공자식 교육의 내요이란 전통을 계승하는 데 적합한 교범의 숙달 및 난세롤 치닫는 현실을 직시하고 통찰하는 눈이라는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공자의 철학

공자의 군자교육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인입니다. 공자사상의 핵심인 인은 하나의 문장으로서 명백히 개념이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박애와 도, 덕, 선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심오한 휴머니즘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이름을 바르게 하고, 이에 따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책임과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 사회 생활에 있어서는 자기의 도리를 다하고 남을 부축하며,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가지 덕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인은 지향하고 예에 정진하는 사람이 군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군자가 덕을 생각할 때 소인은 이익만을 생각하며, 군자가 보편적임에 비하여 소인인 상대적이라고 역설, 인간을 인간적으로 분류 했습니다.

인은 공자가 생각하는 인간의 최고는 도, 덕있었습니다.  덕이란 인간에게서 기대되는 개개인의 훌륭한 자질이라고 중국인은 생각하며 동시에 그것은 영향력 내지는 인격력으로서 남에게 감화를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인의 정치사상에서 근간을 이루는 덕치주의 내지 정치에서의 도덕중심주의의 근거라고 하겠으며, 공자의 정치사상 근저에도 이 같은 기대가 있었습니다.

공자는 당초 위정자 특히 최고 권력자인 군주에게 기대를 걸어 각국을 편력하면서 자기의 사상을 설명했습니다. 군주가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이에 따라 백성의 덕도 높아져 그 결과로서 도덕이 고루 퍼진다면 온세상이 저절로 평화로워진다는 것이 공자의 정치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방식은 난세 아래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인을 터득하게 함으로써 학식과 함께 인격적인 덕을 겸비하는 군자가 되도록 하고, 그들을 장래 정치의 요직에 나아가게 함으로써 난세를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평정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상이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듯하면서도 매우 심오하며, 제자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개인의 능력과 이해도에 따라 적합한 방법으로 유도하여 성품을 개발시켰습니다. 또한 그 자신은 예에 엄격하여 절도가 있었고, 엄숙하고 온화 하고 원만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예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으며 또한 공자와 자하의 대화에서 채색은 흰 바탕이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는 비유를 들어 예의 근본에 대해 강조한 것에 따르면 공자의 예는 외면적 사회규범의 측면도 가지지만 그 바탕에 정직한 마음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심미적 부분을 존중하는 것은 유교가 공자 사상의 장점입니다.  반면 존비친소적 규범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유가의 삼년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공자는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하기 위해 삼년상을 치르는 것이 사람의 도에 맞다고 여겼는데, 목자의 사상을 지지하는 비판자들이 삼년상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이며, 이와 같은 관념이 백성들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공자 사상과 묵자 이론은 존비친소적 규범에 관한 부분은 차이가 있으나, 본질적 이상의 차이라기보다는 방법론적 차이입니다. 공자, 묵자의 사상을 서양 철학으로 분류하면 유심론에 가깝기 때문에 공유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공자의 사상은 생시에 실현되지 못한 채 증자, 자사를 거쳐 맹자에 이르러 활기를 띠고, 한무제 이후 중국의 사상계를 지배한 가장 커다란 조류를 이루었으며, 또 한국 일본 베트남등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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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광선 대역에서의 과측을 기반으로, 안드로메다 은하는 나선은하에 관한 드 보클네르샌디지의 확장 분류 체계에서 SA형  은하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2MASS탐사에서의 자료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팽대부가 상자모양의 외양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은하가 실제로 우리은하와 같은 막내나선은하이며, 안드로메다 은하의 막대가 은하의 장축을 따라 거의 직접적으로 관측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 천문학자들은 켁 망원경을 이용하여 은하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미약한 항성 구조가 실제로 주 원반 자체의 일부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나선형 항성 원반의 직경이
이전에 측정된 직 경보다 세배나 더 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항성 원반은 은하의 직경이 22만 광년 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의 크기에 관한 예전의 측정값은 7만 광년에서  12만년 광년 범위에 이르렀습니다.

은하는 지구에 대해 77도의 경사를 가진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90도의 경사각에 있는 은하는 가장자리만을 보게 됩니다. 은하의 단면 형상에 관한 연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는 단순한 평탄한 원반이 아니라 S자로 구부러진 모양임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굽힘의 이유로는 아마 안드로메다 은하 주변 위성은하와의 중력 상호작용 때문일 것입니다. 삼각형자리 은하 또한 안드로메다 은하의 나선팔의 굽힘이 어느정도 원인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데, 더 정밀한 거리 및 시선속도에 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에 관한 분광학적 연구들을 통해 안드로메다 은하의 중심핵으로부터 반경거리에 따른 회전속도에 관한 상세한 측정이 이루어졌습니다. 회전속도는 중심핵으로부터 1300광년 지점에서 초당 225킬로미터로 최대값을 가지며, 최소값은 중심핵으로부터 7000광년 지점에서 초당 50킬로미터로 추정됩니다. 그 이후부터는 회전속도는 중심반경 33000광년 지점까지 상승하여 250킬로미터 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그 이상의 거리에서 속도는점차 감소하여 반경 80000광년 지점에서는 약 200킬로미터에 이릅니다. 은하의 총 잘량은 45000광년까지 선형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서는 더 완만하게 증가합니다.

1998년 유럽우주국의 적외선 우주 관측선이 촬영한 사진에서 안드로메다 은하의 전반적인 형태가 고리 은하 형태로 전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 속의 기체 및 티끌은 보통 여러 개의 겹쳐진 고리 구조를 이루는데  그 중 특히 뚜렷한 고리 구조는 중심핵으로부터 반경 32000년 광년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고리에는 일부 천문학자들을 통해 불의 고리 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이 고리는 가시광선 영역에서 은하를 관찰했을 때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고리가 주로 차가운 티끌과 수많은 별 형성영역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스피처 우주 망원경의 도움을 통한 이후의 연구에서는 적외선 영역에서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나선 구조가 중심 막대에서 시작하여 앞에서 언급한 거대한 고리 너머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두개의 나선팔로 어떻게 구성되어 보이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선팔들은 실제로 연속적이지 않으며 분할된 구조라고 합니다.

같은 스피처 우주 망원경을 이용한 안드로메다 은하의 안쪽 영역에 관한 조사 역시 작은 티끌 고리 구조류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2억년 또는 그보다 더 이전부터 시작된 메시에 32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형성되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관한 모의실험들은 작은  은하가 안드로메다 은하의 후극축을 따라 은하 원반을 관통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충돌로 인해 메시에 32는 절반 이상의 질랴을 상실하였으며 안드로메다 은하에 고리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무게중심으로부터  편차를 갖는 새로이 발견된 안쪽의 고리형 구조를 포함한,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나타나는 길고 거대한 기체 고리의 동시 존재는 위성은하메시에 32와 거의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수레바퀴 근접의 중간형임을 암시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대한 헤일로에 관한 연구는 은하 헤일로가 우리 은하의 헤일로와 거의 같음을 보여주는데 헤일로에 있는 별들은 일반적으로 금속부족성이며 먼 거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은하가 유사한 진화적 경로를 따랐음을 시사합니다. 이 둘은 지난 120 억년간 대략 100개에서 200개 사이의 저질량  은하들을 강착하여 소화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은하의 헤일로에 있는 별들의 분포는 두 은하 사이의 거리의 대략 3분의 1까지 뻗쳐있습니다.

그 밖의 광원

1968년까지, 겉보기에 안드로메다 은하로부터 탐지된 엑스선은 없었습니다. 1970년 10월 20일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오는 경엑스선을 관측할 수 있는 기구를 탑재한  풍선비행이 이루어졌습니다.

ESA의 XMM-뉴턴 우주 망원경을 통해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다중 엑스선 광원이 관측되어 왔습니다. 이에 관해 로빈 바너드 등은 이들이 블랙홀 또는 중성자별 후보일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유입 기체를 수백만 켈빈으로 가열하여 엑스선을 방출하게 만듭니다. 중성자별의 스펙트럼은 블랙홀로 추정되는것과 동일하지만 추정 질량을 통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에 속박된 구상성단으로 460여개의 구상성단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무거운 성단은 일 구상성단으로 명명된 메이올2로 확인되었는데 국부은하군에 있는 은하의 구상성단 중에서 가장 밝습니다. 성단은 수백만개의 별을 포함하며, 우리은하에서 가장밝은 구상성단인 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의 밝기의 두배에 해당됩니다.

일구상성단은 수백만개의 항성 개체를 갖고 있는 만큼 평범한 구성상단에 의해 매우 무겁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는 G1을 먼 과거에 안드로메다 은하에 흡수된 왜소은하의 핵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가장 큰 표면밝기를 가진 구상성단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남서부 나선팔의 동부 중간에 위치한 G76입니다.
037-B327으로 명명된 또다른 무거운 구상성단이 2006년에 발견되었는데 이 성단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성간티끌로 인해 크게 적색화되었는데 G1보다 더욱 무거울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국부은하군에서  가장 거대한 성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 성단이 실제로 G1의 물리량과 비슷합니다.

출처는 위키백과입니다.


교육심리학이란 교육에 직접 관련된 심리학의 응용분야로서, 심리학의 원리나 방법을 교육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학문이입니다.

 

교육심리학에 있어 교육학은 예상불가능한 교실을 배경으로 하고 심리학은 통제된 실험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심리학은 인간행동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학문이며 인간의 정신생활의 법칙을 탐구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형성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교육에는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교육 현상에는 교육이라는 장과 교육활동에 있어서 그 자체의 동특한 문제와 연구영역이 있기 때문에 교육심리학을 더욱 엄밀히 말하면 굑육의 장에서 제기도닌 문제를 심리학적인 입장과 방법에 의해 해결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교육심리학은 어린이가 출생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적이 발달이 진전됨에 따라 개인의 학습경험을 기술하고 설명하여 주는 과학적심리학이로 할 수 있고 또 교육심리학은 교육활동에 있어서 언제 어떻게 의 질문에 응답하는것이 임무입니다.  따라서 교육심리학을 성립시키는 조건은 교육이 제기하는 문제와 현대심리학이 제시하고 있는 원리와 방법의 두가지가 됩니다. 교육심리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현재 교육의 특성과 그것이 심리학에서 해결을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알고, 한편으로는 현대심리학의 입장과 방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심리학과 성격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변환경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에 따라 교육에 따른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교육심리학은 교육을 효과적으로 이룩하기 위한 식견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면 단계식 교육체계를 제창하였고 그림과언어를 결합한 최초의 고과서인 세계도회에 의해서 어린이의 언어교욱 및 시청각교육의 기초를 제공한 코메니우스, 에밀의 저자인 루소, 페스탈로치등을 이 분야의 선구적인 인물로 제시할 수 있으나 교육방법에서 요구되는 여러가지 개념을 심리학적으로 취습한 것은 헤르바르트에 이르러서 최초의 시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과학적인 입장에서 교육심리학의 원형을 이룩한 것은 역시 현대심리학의 시조인 분트이다. 교육심리학은 아동심리학의 발달에 힘을 입어 아동의 정신발달을 기술하고 거기에서 발견괴는 발달원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심리학의 분야인 아동심리학은 미국의 홀에 의해 최초로 시도 되었습니다.  그는 생물학적. 인류학적인 영역을 포함하는 발생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아동의 도덕적 종교적 교육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아동심리학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인 활동은 교육심리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의 일환으로 독일의 모이만은 심리학과 교육학의 결합을 시도하는 연구제도로서 아동의 정신적 신체적 발갈, 아동개인의 정신능력의 발달, 아동의 개성, 천부의 개인차, 아동의 학교생활, 각 교과에 있어서 학습활동, 고사의 활동 학습니더 학교제도 교수방법 등으로 분류하여 제시를 하였으며, 이것은 교육심리학의 학문적 골격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교육 심리학의 또 하나의 선구적 업적은 개인차에 관한 연구입니다. 이는 구미 제국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개인차에 관한 연구의 선구자는 골턴으로 유전적 천지, 인간능력의 연구 등을 발표했고 미국의 카델은 객관적 방법에 의해서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여 이것을 실제면에 적용하는데 노력하였으며 특히 1893년이후 매년 컬럼비아대학의 신입생들에게 실시한 테스트는 멘탈테스트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골턴과 카텔의 개인차 측정은 지능검사로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프랑스 비네에 의하여 1905년에 파리 초등학교 어린이의 저능아 감별이라는 당시의 교축계의 요청에 부응히서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아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에서부터 20세기초까지 발달하여 왔는데, 유치원 교육의 기초는 프뢰벨에 의해 확립되었고, 아동심리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독일의 생리학자 프라이어 이후 아동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교육심리학의 성립동기는 단순히 심리학과 교육이 접촉하는 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심리학은 교육현상의 사회적 제 기능에 관한 심리학으로서 그 영역은 비교적 광범위합니다. 교육활동이 사회 안에서 부단히 성장 발달하고 있는 피교육자와 교육자 사이에 작용이라고 본다면, 교육심리학은 교육의 장으로서의 사회의 변화현상의 문제(사회심리학)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 즉 아동 학생들의 심리발달의 문제(발달심리학) 그리고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지도를 위한 교육기술의 문제(학습심리학)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습니다. 스키너는 성장과 발달, 학습, 성격과 적응, 측정과 평가, 교수와 지도의 분야로 분류하였고, 게이치등은 성장과 발달, 학습, 성격과 적응등으로 분류하였으며 크론바흐는 모든 행돋과정을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취급했습니다. 

 

 

발달심리는 교육의 목적이 피교듁자의 바람직한 발달을 조장함에 있다면 신체 및 정신적인 면에서 부단히 성장하는 아동 및 청년의 발달과정과 그 속도, 제반 행돋야식과 정신능력의 발달관계 성숙과 학습의 기능 행동의 변용과 쇠퇴, 새로운 행동양식의  출현 등에 대하여 교육적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학습심리할 교육활동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것이 학습입니다.  교육심리학에 있어서 학습의 연구는 교육목표에 비추어 학습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며 교육과 생활의 장으로서의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교육목표에 접근하려는 활동을 하는가, 또 최선이 조건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학슴의 원리, 유형 문제해결, 학습의 효과와 전이등의 문제는 교육심리학의 중심과제로 손다이트 이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정신위생과 지도는 개인이 사회와의 상호관계에서 어떻게 조화되며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고 공동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가는 정신위생적인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더욱이 부적응아를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깊은 이해와 교육심리학적 통찰이 요구되며, 이 밖에도 교사와 학생관계에서는 정신위생문제, 교사의 정신건강, 자질, 인성, 적격성의 문제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평가라고 할때 많이 혼용되는 단어가 측정, 검사, 사정, 평가 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어의 개념은 혼용될 수 없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측정은 어떤 대상에 대한 특성을 수량화하는 것으로 직접측정과 간접측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격, 동기, 신념 등과 같은 인간에게 잠재된 특성은 직접적인 측정이 어려워 간접측정을 합니다.  사정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과정입니다.

 

집단의 심리적 경향은 성원의 인격적 상호 작용에서 나타나는 결과이며, 성원은 상호과계에서 집단생활의 방법을 학습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집단의 형성과 변화과정에서 야기되는 심리관계를 규명하는 집단역도 분야가 나타나 있고, 교육심리학에서는 집단의 구성, 응결성, 사기, 안정성 등을 규명하여 성원간의 견인과 반발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이들을 바람직하게 지도하는 데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구방법

인간기능을 환경에 대해서 끊임없이 변화되므로 연구영역은 매우 광범위합니다.  인간을 다루는 교육심리학의 과학성은 상대적인 과학으로서, 숙련된 연구자에 의해서 정확을 기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교육심리학의 한 방법으로서 실험적인 방법만 하더라도, 실험실 내의 실험과 실험실 밖의 교육현장의 실험을 병옹하는 것이 조건 통제민 조작상의 장점을 살릴수 있습니다.

 

연구심리학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중용한 것은 관찰법, 조사법, 검사 특정법, 임상연구법, 교육총계법 등이 있습니다.

교육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접근법을 방법상의 기본측면에서 분류해보면 규범적 접근, 설명적 접근, 자연적 접근,  조작적 접근,  동시적 접근, 역사적 접근, 무이론적 접근, 이론적 접근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의 출처는 위키백과 입니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지구에서부터 약 780킬로파섹 (250만광년) 떨어져있는 나선은하 입니다. 이는 우리은하로부터 가장 가까운 큰 은하이며, 메시에31 또는 NGC 244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옛문헌에는 종종 안드로메다자리 대성운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은하의 명칭은 은하가 보이는 별자리 즉 안드로메다자리의 명칭을 따서 붙여졌습니다. 여기서 안드로메다자리는 그리스 신화의 안드로메다 공주의 이름을 따 붙여진 별자리입니다. 폭이 대략 22만 광년인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 및 삼각형자리 은하와 대략 44개의 작은 은하들은 포함하는 국부은하군에서 가장 큰 은하입니다.

초기의 탐사들은 우리은하가 더 많은 흑암물질을 포함하며 국부은하군에서 가장 클것이라고 시사하였지만 2006년 스피처 우주 망원경을 통한 관측들은 안드로메다 은하가 2000~4000억개의 별들을  포함할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은하의 적어도 두 배에 해당하는 1조개의 별들을 포함하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2009년 연구에서는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질량이 거의 같음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는 37억 5천만년후에 충돌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그결과 서로 병합하여 거대타원은하 또는 거대원반은하를 형성할것으로 보입니다.
안드로메다은하의 겉보기등급은 3.4등급으로 메시에천체중에서 가장 밝습니다. 때문에 광공해가 적은 지역에서 달이 없는 밤에 맨눈으로도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큰 망원경을 통해 촬영되는 안드로메다은하의 모습(시직경)이 보름달보다 여섯배나 크기때문에 표면밝기 문제로 인해 오로지 밝은 중심영역만이 맨눈이나 쌍안경, 작은 천체망원경을 통해 보입니다. 그래서 은하는 실제로 별과 유사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는 그의 964년경의 저서  '항성에 관한 책'에서 별자리에 관해 안드로메다은하를 '작은구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주기에 관한 성도에서는 은하를 작은 구름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망원경관측을 기반으로 한 안드로메다은하에 관한 첫 설명은 독일의 천문학자 시몬 마리우스가 1612년 12월 15일에 쓴것입니다. 샤를 메시에는 1764년에 안드로메다은하를 M31로 자신의 목록에 수록하였으며, 안드로메다은하가 육안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천체의 발견자로 마리우스를 적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1785년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우 M31의 중심 영역의 색상을 희미한 적색 빛깔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M31이 모든 대성운 중에서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여겼으며 색깔과 성운의 등급에 근거하여 시리우스의 거리의 2000배이상 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못 추측하였습니다. 1850년 윌리엄 파슨스와 로제 3세 백작은 안드로메다은하를 관측하여 은하의 나선구조에 관해 처음으로 그림을 남겼습니다.

윌리엄 허긴슨는 1864년에 M31의 스펙트럼을 관측하였으며 그것이 기체 성운과는 다르다고 기록하였습니다. M31의 스펙트럼은 흡수선들이 겹쳐진 진동수에 따른 연속체를 보여주는데 그러한 연속체속의 어두운 흡수선들을 천체의 화학적  조성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M31의 스펙트럼은 각 별들의 스펙트럼과 유사하며 이를 통해 M31이 항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음이 추론되었습니다. 1885년에는 M31에서 초신성하나가 관측되었습니다. 이것은 안드로메다자리 S로 알려져 있는데,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관측된 최초, 유일한 초신성입니다. 안드로메다자리 S는 M31 근처의 천체로 간주되었는데 그 이유는 안드로메다자리 S가 초신성보다 덜 밝은 별개의 사건인 신성으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그로인해 당시에는 '신성1885'로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이것이 초신성으로 밝혀짐에 따라 현대에는 초신성명명법에 따라 SN 1885A로 부르기도 합니다.

M31에 관한 첫 사진은 1887년 영국의 아이작 로버트가 서섹스에 있는 자신의 천문대에서 촬영한것입니다. 그 시각에 M31은 우리은하에 있는 성운의 일종으로 여겨졌으며 로버트는 M31과 그와 비슷한 나선성운들이 실제로 새로 형성되는 태양계일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태양계에 대한 M31의 시선속도는 1912년 로웰 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의 분광학적 연구를 통해 측정되었는데 태양방향으로 초당 300킬로미터 정도로 당시에 기록된 것 중 가장 큰 시선속도였습니다.

1917년 미국의 천문학자 히비커티스는 M31에서 발생한 신성을 관측했습니다. 그는 사진 기록들을 연구하면서 11개의 신성을  더 발견하였습니다. 커티스는 이 신성들이 하늘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신성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10등급은 어둡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커티스는 M31까지의 거리를 약 50만 광년으로 추산할수 있었는데 때문에 그는 나선성운들이 실제로 독립적인 은하라고 주장하는 섬우주 가설의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1920년 할로우 섀플리와 커티스 사이에 우리은하와 나선성유의 성질 그리고 우주 크기에 관한 대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커티스는 안드로메다자리 대성운이 실제로 외부의 은하나는 주장을 보강하기위해서 안드로메다자리 대성운에서 상당한 도플러이동을 관측했을뿐만아니라 우리은하의 티끌성운과 유사한 어두운 띠의 존재를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1922년에는 에른스트 외픽이 M31과의 거리를 추정하기위해 그 속에 측정된 별들의 속도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서 거리를 대략 45만 파섹 (150만광년)으로추산하였는데 이는 안드로메다자리 대성운이 우리은하 바깥 멀리 있음을 의미합니다. 에드윈 허블우 1925년에 대성운의 사진에서 처음으로 은하 외부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하여 이 논쟁을 종결지었습니다. 2.5미터 후커망원경을 통해 촬영된 사진들을 통해 안드로메다  대성운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는데 그의 측정은 안드로메다 자리 대성운이 우리은하 내부에있누 기체 및 별의 군집이 아니며 우리은하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 별개의 은하임을 입증하였습니다.

M31은 가장 가까운 큰 은하이기때뮤에 은하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943년 발터 바데는 안드로메다  은하 중심 영역의 별들을 처음으로 관측하였습니다. 그는 이들의 중원소함량에 근건하여 별개의 두 분류군을 발견하였는데 원반의 어린 고속별들에게 1형을 부여하고, 은하 팽대구속의 늙은 적색 별들은 2형을 부여하였습니다. 이 명명법은 후에 우리은하 및 다른 은하의 별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바데는 세페이드 변광성에 두가지 유형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때문에 M31까지의 거리 측정 뿐만 아니라 다른 은하들까지의 거리 측정 방법이 배가 되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에서의 전파방출은 조드럴 뱅크 천문대의 핸버리 브라운과 시럴 해저드가 218피트 트랜싯 망원경을 통해 처음으로 관측하였는데 1950년에 그 사실을 발표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케임브리지 전파천문학 연구집단의 존 볼드윈과 그의 동료들을 통해 은하에 관한 첫 전파지도가 만들어 졌습니다.
2009년에는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행성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행성 후보는 무거운 천체에의해 배경 별의 빛의 휘어짐을 야기하는 중력렌즈라 불리는 기법을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사춘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로 만 12세부터나 혹은 조금 더 빨리 시작하며 제2차 성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심리적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며 사춘기가 되면 남자는 남성답게 여자는 여성답게 변모하게 되며,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변화가 더 빠른편입니다. 여자는 보통 만12세부터 월경이라는 생리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를 주기적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월경주기 라고 합니다. 남자는 사정을 하게 되는데, 고의적인 사정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잠을 자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사정을 하게 되며 이를 몽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춘기  행위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사춘기 즉 제2차 성징이 끝나면 청소년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성인이 됩니다. 심리적으로는 예민해지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고 이런 이유로 사춘기에 부모와  마찰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부끄러움이 많아지며 성욕이 왕성해집니다.

여자아이에서 사춘기와 남자아이의 사춘기 사이의 가장 큰 중요한 차이점은 그것이 시작되는 나이와 관련된 주요 성 스테로이드, 테스토스테론및 에스트로겐입니다.

정신적인 연령대가 다르긴하지만, 소녀들은 보통 10세 또는 11세에 사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개는 15세에서 17세 사이에 사춘기를 끝냅니다. 소년들은 대개 16세에서 17세 사이에 사춘기를 끝냅니다. 여아는 사춘기의 첫번째 육체 변화 이후 약 4년동안 재현성있는 성숙을 이루며 반대로 소년들은 더 천천히 감속하지만 초기 청소년기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은 후 약 6년 동안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2차 성징은 성장하면서 남녀의 신체적 특징이 드러나는것을 말합니다.
2차성징의 변화는  남자의 경우 목소리가 굵게 변성기가 오고 음모와 액모와 수염이 납니다. 그리고 음경과 고환이 발달하고 근육이 발달하게 됩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유방이 커지고 골반이 넓어지며 남자와 마찬가지로 음모와 액모가 발달하여 월경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조숙증은 사춘기가 빨리오는 질병이며 처음에는 키가 빨리자라지만 성장판이 일찍 닫혀 최종키는 평균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춘기지연은 사춘기가 늦게 오거나 오지않는 질병입니다. 성조숙증과는 반대의 질병입니다.
사춘기 지연의 원인으로는 칼만증후군등 유전자이상과 터너증후군, 클라인펠터 증후군등 염색체이상, 아연결핍등 영양문제, 호르몬문제 등이 있습니다.

중학생 시기에 해당하는 청년 전기에는 신체의 성장이 현저하며, 성적 관심도 강해집니다. 중학1학년 시기에는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아직도 강하며, 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열심이며 2학년때쯤이 되면서부터 청년적 특질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교사에대한 비판이나 반항도 강해집니다. 이 시기에는 학생의 신체적,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상응하는 교육내용과 방법 등을 충분히 토의시키고 연구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활발한 운동과 동시에 올바른 성교육도 필요합니다.

고등학교 시기인 청년 중기에는 신체적, 지적, 정서적, 사회적 성장과 발달이 현저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이 시기에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충분히 단련되어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운동과 학습에 전념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성인에 의존하고 있었던 아동기와 자주독립하는 성인기와의 과도기이므로, 신체적 변화에의 적응,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친구와의 적응, 장래의 설계 , 인생관의 확립 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혼란이 일어나기 쉬우므로 개별적인 카운슬링이 필요합니다.

대학연령기인 청년 후기는 대학교육을 받거나 직업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는 연령입니다. 이 무렵에는 남녀모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이 거의 완료되어있습니다. 남자는 이 시기에 모든 운동능력이 정점에 이르도록 발달하여, 경기나 모든 종류의 경쟁적 운동에 대한 관심이 강렬해집니다. 정서적으로는 감정을 억제하여  언제나 희로애락의 표현 극단적으로 자제하므로 정서적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성인적 태도와 능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청소년기는 성년기에의 과도기로 부적응의 시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정서적 불안정의 시기입니다. 자아의 발견 때문에, 또한 많은 불안을 안고 있기에  다양화하고 심화하고 동요하는 내면생활이나 감정으로 인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기위해 애정적인 욕구도 강해질 것이며 그것들을 얻지못한데서  오는 강한 고독감이나 자기부정의 감정, 열등감등이 특징적인 정서적 상태입니다. 자기혐오나 자기비판 등도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때로는 그 표출이 반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위험성까지 지니게 됩니다.

신체적 성장은 점차 둔화되면서 18세를 전후하여 거의 멈추게 되는데, 20대초반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구치는 14세까지 28개가 나오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약간 빨리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14세이후 남자의 신장은 급속도로 성장하지만, 여자는 이 때부터 키 성장 속도가 점차 줄어듭니다. 여자의 월경 시작은 12세에서 14세 사이이며   전반적으로 12세에서 14세 사이에 95%가 처음 월경을 합니다.

청소년기에는 다시 운동능력이 급격한 발달변화가 일어납니다. 운동능력이 발달은 남자가 여자보다 상당히 급하고, 연령과 함께 성별의 차이가 커집니다. 대체로 16세에서 17세를 정점으로 하여 이후로는 정체하거나 감퇴하게 됩니다.

여자는 민첩성이나 주력은  16세에서 17세에 정점에 달하지만, 그 밖의 운동능력 중에누 12세이후 전혀 늘지않거나 쇠퇴해 버리는 능력도 있습니다.

남녀모두 손끝의 운동은 더 뒤에까지 발달하지만 환경요인과 직접적으로 경험에 의해서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운동능력을 획득하는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성이 필요하지만 획득후에 발달에는 연습 경험 학습이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수준이 자극이 되고 토대가 되어서 차차 강력성 속도 유연성 교묘성등을 발달시킵니다. 운동의 발달은 대체로 질서있게 진행되지만, 개중에는 반대가 된다든지, 뛰어넘는 일도 있고, 이행도 순조롭다고는 단정할 수 없으며, 개인차도 현저합니다.

무의식은 사고 과정, 기억, 동기 따위 없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작용입니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대중화 되었습니다.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무의식적 작용은 꿈이나 농담따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고 이해됩니다.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분석학이나 카를 융이 제창한 분석심리학에서 무의식은 마음 속의 의식이 아닌 영역 입니다.

비정신분석학적 학문들에서는 무의식적 활동이란 의식적 자각에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 정신적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합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것 같은 별개의 영역으로서의 무의식 개념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따위의 이론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인지과학 등에서의 무의식은 그러한 이론보다는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컨데 인지과학 연구자들은 사람이 의식적 사고를 통해서 얻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의식적 자각 바깥에서 자동적, 비의도적으로 획득할 수 있음을 밝혀냈으며 이러한 것을 무의식적 작용이라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학자이지만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무의식을 부정했으며,  모리스 메를로퐁티 간은 현상학자들은 무의식도 수동적 의식으로서 결국 의식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융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셀링이 서양의 무의식의 발견자고 합니다. 

AD4세기 무렵 나타난 불교의 유식사상에서는 의식외에 무의식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제칠식, 아뢰야식이라는 두 개의 심층의식층을 상정했습니다.


무의식적이다고는 무엇인가 말하는 것은 그 전제에 의식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의 이해가 없으면 안됩니다.  의식이란, 인간 일반적으로 두고, 내가 이식하고 있으면, 의식하고 있을 때, 자명적으로 존재 이해되는 무엇인가 이라고 됩니다. 철학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의식과 자아는 동일시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의식은 주관적으로 파악되어 왔지만 근대에 성립한 과학이 그 연구 대상으로 하려면, 객관적인 규정으로서는 적절하지 않고, 애매하고, 한편 정량적 파악도 곤란했습니다.  그때문에 마음의 할문인 심리학에서도, 마음이나 영혼 혹은 의식은 과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하고 자극과 반응 그리고 심리학을 쌓아 올릴고 한 행동주의 심리학 등이 출현했습니다. 현재에도 마음의 개념과 같이 의식의 개념도 주관저그으로 파악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존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고 생각하는 심리학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대상으로 해 객관적 파악이 곤란이라고 해도 의식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의 존재는 자명하다 라고 하는 명제 또한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주관적 파악), 과학적 객관적으로는 관찰되지 않으며 마음의 개념과 같이 의식의 개념도 존재하고 있으면 최초부터 전제 하고 있는 심리학도 많습니다. 적어도 일반인은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지 않아도 의식은 자명의 것으로 해 다루어지거나 하고 있는 것이 현상입니다. 

물론 의식도 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파도 있어 확정하고 있지 않는것이 현상입니다.


무의식은 의식이 없는 상태와 마음속의 의식이 아닌 혹루영역 의 두개의 주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의식의 없는 독 혹은 영 이랄 강한 의미로 대뇌의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뇌의 기능은 인간이 살아 있는한 완전하게 정지하지 않고 거의 없다란 어디까지 없는 것인가, 객관적인 기준이 모호합니다.


한편 약한 의미로 의식이 없다의 경우 눈치채지 못한다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처음은 책의 문장의 내용과 음악의 양쪽 모두가 의식됩니다. 그러나 독서에 집중하고 있고 문득 무엇인가로 중단되면 음악이 갑자기 들려 온다는 일이 있습니다. 음악은 쭉 울리고 있었지만,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의 진행에 눈치채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미우 다수의 감각 자극이나 의미의 자극을 받아 그 대부분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하고 있지 않다-눈치채지 못한다 감각자극이나 의미의 자극으로 대뇌는 감수해, 기억에 새기고 있는 것은 더 방대한 양이 존재합니다. 기억에 관한 심리학의 실험으로부터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여러가지 것을 의식하지만, 목전, 혹은 지금여기의 감각적, 의미적 자극의 패턴 이외로 의식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기억입니다.  기억재생은 어느 말이나 지식등이 재현되기도 하지만 또 내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과거의 정경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기억은 일상적으로 재현되고 있어 복잡한 순서를 필요로 하는 작업에서도  그 하나하나의 순서를 의식하지 않는다 로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복잡한 한자를 쓰는 경우, 어느 선을 긋고, 다음은 어느 선을 어디에 어떻게 긋는가 등과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고 쓰는것은 아닙니다.

기억을 상기하고 있다는 의식-없이, 매우 많은 일이, 이 현재에 상기되어 이미지나 감정이나 의미로 구성되는 -의식의 흐름-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분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고,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케이스가 존재해, 이 때, 의식의 매끄러운 흐름은 막혀, 기억을 재생하려고 하는 노력이 의식에 오릅니다.

생각해 내려고, 노력등이 필요한 기억은 -매끄럽게 흘러 가는 의식의 영역-에는 상기가 성공할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됩니다.

그럼 그러한 기억은 어디에 있었는가, 물론, 대뇌의 신경세표의 구조 관계의 패턴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가, 주관적인 경험으로서는, 그러한 기억은 -현재의 의식 영역- 의 밖, 전의식 이라는 영역에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일상적으로 흘러 가는 의식 속에서는 여러가지 의식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현재의 의식의 대상은 눈앞, 하고 있는 감각, 의미, 감정, 등의 패턴이지만 또 정체가 없는 자연스러운, -눈치채는 일 없이- 상기되고 있는 기억의 내용이 그 대상입니다.

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각성 의식이 있다, 무언가에 눈치채고 있다, 라고 하는 통상적인 의미 이외에 주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의 총체가 존재하고 있는 영역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의식하고 있다 또는 무언가에 눈치챈다 하고는 대상이 의식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 의식에 올라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일생 속에서 방대한 양의 기억을 대뇌의 생리학적은 기구에 새기며 그 안에서 재차, 기억으로서 의식에 재생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재생되지 말고, 대뇌의 기억의 저장 기구 속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대한 기억은 개개 뿔뿔이 흩어지게 고도의 집단과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상이 기억의 상기를 촉진하는 것부터 분명한 것 같게, 감각적 혹은 의미적 감정적으로 연관 구조나 그룹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억에 새겨지고 있는한 어떠한 기억이어도 재생 상기될 가능서은 완전히 제로는 아니게 됩니다.

사람의 일생이 있고 재차 상기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다고 해도, 사실상, 일평생에 있 두번다시 의식의 영역에 올라오지 않는 방대한 양의 기억이 존재합니다. 주관족으로 바라볼때 일평생으로 두번 다시 상기되지 않는 이러한 기억은 의식밖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것이 타당합니다.

의식의 밖이라고 해도 과학적으로는 대뇌의 신경세포 네트워크의 어디엔가 새겨지고 있는 것이며, 의식 밖이란 주관에 이쓰어서 현상적으로 의식이 아닌 영역에 방대한 기억이 존재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식이 아닌 영역이 무의식의 제2의 의미가 됩니다.

의식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기억만이 아닙니다. 또 기억은 어떠한 의미로 구조화 되고 있어 무의식의 영역의 방대한 기억이 어떻게 구조화 되는가 하는 일도 문제입니다.

인간에게는 경험이나 학습에 의해서 얻은 기억 지식 이외에 천성적 또는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지식이나 구조가 존재합니다. 그 하나의 예는 인간의 언어 이며, 인간의 언어는 현재의 지견에서는 인간 밖에 완전하게는 구사할 수 없습니다.

놈 톱스키의 생성문법은 인간의 대뇌에 선천적으로 언어를 구성하는 능력 혹은 구조가 갖춰지고 있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유한수의 단어를 기억합니다. 단어는 , 단어가 나타나는 문장 문맥과 함께 기억됩니다. 그러나 아이의 언어 생성 능력은, 그것까지 들은 적이 없는 문장, 따라서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장을 말로서 이야기하는데 있습니다. 기억한 적이 없는 문장을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은 기억은 아닌 것이면 어디에서 이러한 문장이 용출하는 것인가.

그것은 의식이 아닌 영역, 또는 무의식으로부터 용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톱스키가 생각한 보편문법의 구조는,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정서구조이다. 언어의 자연스러운 생성, 언어의 흐름의 생성은, 의식의 밖에서, 즉 의식의 심층, 무의식의 영역에서, 말과 의미를 둘러싼 정서를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의식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의식의 밖의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에 기억이나 지식이나 구조가 존재해 이러한 기억이나 구조가 의식의 내용이나, 그 있는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가설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실증되는 사실입니다. 뇌가 없으면 언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층심리학의 이론이 대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 분석학에선, 무의식 중에 억압의 구조를 가정해 이러한 구조에 대해, 신경증이 발병한다고 하여, 그 치료법의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또 정신 분석의 이론의 응용으로서 개인의 양심, 사회의 도덕의 기원을, 무의시의 억압 구조의 문화적은 작용으로서 설명했습니다.  에를 들면 버릇이나 일견 우발적으로 보이는 실언에 대해 본인은 후에 설명을 시도하지만, 객관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개인적인 억압 구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융의 언어연상법도 계승해지고 있습니다.


분석심리학을 제창한 카를 융은 자아인 나 인가  왜 나인가를 물었습니다. 나인 의미는 영혼의 완전성, 원구적 완전성의 실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의식은 자아를 자기 즉 신으로 높여가는 구조를 가진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러나 융의 기본 이론과 융의 사상은 나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융의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지 않고 현대적인 범주로의 과학으로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분석심리학은 신화의 의미 죽음과 삶의 의미 등을 사상적으로 해명하는데 유효했습니다. 융 자신은 과학이론으로서 신중하게 이론을 구성했지만, 그것은 표층 구조에 대해 용이하게 종교나 오컬트에 전용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의식이 아닌 영역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최면 상태로의 의식 상태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약물 섭취로 생기는 변성의식 등도 통상의 의식이 아닌 상태입니다.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의 무의식은 그들이 이론적으로 상정한 구조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실증되지 않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20세기 전반에 태어난 이러한 무의식의 개념은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며, 사상이나 예술에 현재도 아직 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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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으로서. 인문과학에서부터 자연과학, 공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분야에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관계된 모든 분야에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관한 연구인 심리학의 학문적 뒷받침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인간의 삶의 질과 관계된 문제들이 점점 더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에는 감각, 지각, 사고, 성격, 지능, 적성 등의 인간 특징들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과 그에 대한 원리를 밝히는 심리학은 미래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점점 더해갈 것입니다.

기원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심리학에 대한 생각은 쭉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정립 이전의 심리학은 그 경계가 모호하였으며 철학자들이 다루는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일찍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론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에 대한 논쟁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데카르트는 유명한 심신 문제에 있어서 이원론을 주장함으로써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임을 주장하며 마음에 대한 경험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는 현대 심리학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티마 칼리파조의 선구적인 과학자 이븐 알하이탐은 1010년 출간된 그의 저자 광학 에서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시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독일 스콜라 철학자 루돌프 괴켈은 1590년 출간한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조건을 사용한 심리 실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보다 60년 전 크로아티아의 휴머니스트 마르코 마루릭은 조건을 사용한 그의 작업 목록을 남겼으나 그 내용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독일의 형이상학 철학자 볼프가 그의 저서 심리 실험과 심리 추론을 출간함으로써 조건을 사용한 실험은 일반적인 심리 실험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디드로는 이러한 심리 실험과 심리 추론의 차이점에 대해 그의 백과사전에 기술하였고 비랑에 의해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의사 윌리스는 정신과적 치료의 목적으로 뇌의 기능을 연구하면서 정신의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심리학은 철학에서 완전히 나누어져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879년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물리실험실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내성법을 주장하였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는 1890년 심리학 개론을 출간하였고 당시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파블로프는 유명한 고전적 조건 형성 심험을 통하여 학습과정을 연구하였습니다.


형체주의 심리학

게슈탈트 심리학은 1910년에서 1912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는 독일 심리학자 베르트하이머가 자신의 논문 운동지각에 관한 실험연구를 통해 일상적인 지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시기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립에는 물리학자인 마츠, 철학자 에렌펠스, 칼 스텀프의 세 사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흐는 특정한 공간 형태는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여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젹 감각요소 이상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이후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영향아해 성장하였습니다.


베르트하이머는 가현운동을 주목하였으며, 여기서 실제로는 없었지만 지각된 움직임을 파이운동이라 불렀습니다.  이를 토대로 그는 부분과정 자체가 전체의 고유한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연구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문을 연 연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르트하이머의 피험자였던 코프크와 코흐르 역시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으로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코흐르는 이후 게슈탈트 이론의 보급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게슈탈트 현상이 어떤 원리로 조직되었는지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였으며, 이 연구들로 밝혀진 것들을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라 이름붙여 발표 하였습니다. 이 원리는 근접성, 유사성, 좋은 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레윈은 여러가지 이력을 가진 이색적인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사회심리 , 발달심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의 장 이론은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며, 이에 따르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환경과 사람 모두입니다.  레윈 위상기하학을 차용하여 자신의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 외에소 리더쉽 연구, 개별 사례 연구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1890년대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프로이드는 정신분석학을 주창하여 독자적인 심리학 영역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하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 행동의 기반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로 보았습니다.  이 중 리비도는 초기 프로이트, 타나토스는 2차 대전을 경험한 이후의 프로이트가 제창한 개념입니다. 

정신분석이 심리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의식의 발견, 그리고 심적 결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 이후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을 수많은 정신분석가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 중 유명한 학자로는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융 ,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애들러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곧 과학적 엄밀성의 결여, 경험적 증거의 부족, 이론체계의 반증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과학철학자 포퍼에 의해 유사과학의 세 가지 사례들 중 하나로 지적받게 되면서 그 지위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칼포퍼가 주장한 반증 가능성과 경험적 증거가 과학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주장이 속속이 반박당하고 오류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이러한 지적은 상당부분 수그러들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이론 자체가 적용되지 않은 부분들과 문제점, 그리고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 등으로 영향력이 축소되어서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지 않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

20세기 초 왓슨, 손다이크, 헐, 톨먼, 스키너 등에 의해 행동주의 심리학이 주창되었습니다. 이들은 쥐, 비둘기 등의 동물을 이용하여 하학습과정을 연구하였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학습환경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 주장하였습니다.

이 자극 반응 이론으로 미국을 중심으로한 세계 여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특히 심리학의 과학화에 큰 공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검증 가능한 것을 강조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발맞춰 심리학 연구에 있어서도 검능가능 한 것 들만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그 이전의 큰 심리학적 흐름이었던 정신분석과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행동주의자들은 검증가능한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정작 심리학의 진정한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심적 내적 과정에 대한 탐구를 소홀히 한 결과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인지혁명 이후 주된 패러다임의 자리를 인지심리학 등 다른 분야에 내주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는 과장된 비유적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 뜻은 인간의 성격이나 감정, 본능이 행동으로 직결되며 이 외의 요소나 우연 등의 예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이니 언어 등 겉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관찰로 얻은 정보와 연관지어 인간의 감정이나 성격을 확신하여 구명하는 것을 비판한다는 뜻입니다.



인지주의 심리학

인지심리학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는 감각정보를 변형하고 단순화하며 정교화하고 저장하며 인출하고 활용하는 등 모든 정신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라고 정의 하였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른바 인지 혁명은 심리학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단순한 자극 반응을 체계로 보았는데 이로 인해 행동주의 심리학은 블랙박스 심리학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관찰 측정이 가능한 것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인간의 심적, 내적 과정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이러한 자극 반응이 어떠한 경로와 기제를 통해 일어나는 지를 거의 규명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엄 촘스키 등 언어학자들과 앨런 튜링, 폰 노이만 등의 컴퓨터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인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촘스키는 심리학의 연구 대상은 인간의 내적 심리과정이어야함을 주장하여 행동주의 심리학을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다아대 심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현재 심리학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인지심리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인지심리학은 행동주의 심리학과 달리 내적인 심리과정을 중시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인지심리학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심리과정을 컴퓨터의 정보처리과정에 비유하여 이해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접 학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이로 인해 인지 심리학은 흔히 인간정보처리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인지심리학은  현재 인접학문들 철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언어학 등과 협력하여 인간 인지과정의 신비를 벗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서 크게 간학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심리학

1950년대 샤르트르 등의 철학자가 주창한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인본주의 심리학이 파급되었습니다.  주요 심리학자로는 욕구이론을 주창한 매슬로, 인간중심 심리치료를 주창한 로저스, 직관적이며 전체적 인지를 중시한 장 이론인 게슈탈트 심리학을 주창한 펄스 등이 있습니다.

도덕론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전반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기였고, 이로인해 개인윤리의 타락이 극심한 시대였습니다. 그는 여러 악덕을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덕은 이성적 사고의 기초하에 생겨나고 또한 덕의 확대는 사회를 더 이성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이성의 냉소로 인한 부덕함이란 개념 자체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악덕한자는 필연적으로 앎이 부족한 무지한 상태에 있다고 보고 이러한 의미에서 '냉소적 이성'은 성립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는 이러한 지행합일론은 그가 윤리,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절제를 추구하며 자신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을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선은 중시하여 토론 과정에서도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습니다. 이러한 관점 은 사후 '스토아학파'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기독교의 윤리관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영혼 중심적 사고

소크라테스는 육체-영혼 이원론자였습니다.
그는 육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 지식은 영혼 안에 내재된 개념이라고 봤으며 영혼은 불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소유한 존재지만, 육체의 감각적  요소에 의해 영혼에 내재된 진리를 통찰하는 것을 계속 방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극복하면 지식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극복방법은 바로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산파술로 감각으로 인해 얻는 여러 오류를 하나씩 잡는 것에 있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하여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긍정하기도 했습니다.

변론과 크리톤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이 회자되지만 소크라테스가 직접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이며 말한 사람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변론'에서 법정이 철학을 포기한다면 석방해주는 제안을 하더라도 철학을 하는 이유는 하늘의 명령이므로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법 이상의 철학적 원칙과 신념에 기초하여 의사결정을 했던 몇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반면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독배를 내린 법률에 대해 자신을 국외 추방을 제의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동의한 절차적 정당성을 뒤늦게 훼손할 수 없다고 친구인 크리톤에게 밝힙니다. 그러나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평소의 냉정한 변증법적, 이성적 논법을 구사하지 않고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모습으로 크리톤을 설득하고 있기에 이는 진의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변론과 크리톤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 중 크리톤에 실린 모습이 과장되어 변론에 담긴 법령 불복종자의 모습을 누르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삶과 철학을 비추어 볼때 이런 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진리조차도 회의하고 가짜로 드러나는 순간 바로 폐기시키는 엄중함이 있는데 기껏해야 인위적인  실정법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이는 철학의 법과 기본 성격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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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술

소크라테스는 구두언어의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는 구두언어는 지식의 매개인 정신을 다른 상대방에게 전하는 유일한 운송수단으로 봤습니다. 즉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구두언어는 현대의 관점에서 말하는 단순한 규칙적인 음파의 개념이 아니 발화자의 사유 자체를 어떠한 오류도 없이 밖으로 내보내서 듣는 이의 사유에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던것입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했는데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주는 것보다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것을 선호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의견이 무지에 기인한 의견 또는 그에 준하는 단견일 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식을 알지 않는 한 토론을 중지시켜 ' 앎의 변증'을 멈추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질문에서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이러한 변증의 과정을 통해 진리에 가까워 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미적 범주를 적어도 세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그 세 범주는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미',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미', 그리고 유용한 또는 기능적인 미 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져 메가라 학파, 키니코스 학파, 키레네 학파 등을 이루고 특히 수제자인 플라톤의 과념주의로서 피어나, 그 후의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기독교 수도원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이 직접  책을 쓴 일이 없고  또한 문학적 흥미를 지닌바 없지만 그가 철학의 방법으로 취한 대화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걸작 대화집을 낳았습니다. 또한 그의 독창적 개성과 비극적인 죽음은 전기문학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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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기분장애의 일종이며 우울한 기분, 의욕과 관심 정신활동의 저하, 초조, 식욕저하, 불면증, 지속적인 슬픔과 불안 등이 특징입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변화가 생기므로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우울증은 정도에 따라 가벼운 우울증과 심한 우울증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경한 수준의 우울증은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직업활동 사회활동에 문제가 없는경우 입니다. 중한 수준의 우울증은 정신건강체계레서 다양한 우울증상이 지속될 경우 우울 장애, 또는 특정한 다수의 증상이 상당기간 계속되는 주요우울장애 입니다.

우울증의 본질은 생리학적, 해부학적 문제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이러한 인체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결과에 해당합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우울감입니다. 우울감의 원인은 대인관계,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 등이 있습니다.

마음의 감기라 일컫는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삶을 위협을 수 있는 위험한 질병입니다. 당사자의 의지문제로 보거나 종교적 믿음 부족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주요우울장애는 장애인 등록이 되는 정신장애입니다. 장애인 복지법에서는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과 더불어 주요 우울장애와 반복성 우울장애를 1년이상 지속적으로 치료해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장애가 명확한 경우에 정신장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은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물질들이고 이들뿐 아니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과 관련된 여러가지 호르몬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칩니다. 임신우울증 산후우울증 주부우울증 계절우울증 등의 이름에서 알수 있듯 내적 외적 영향도 받습니다. 양극화나 실업등 사회적 요인으로 우울증을 겪는 경우 사회적분위기의 시정이나 사회 안전망의 확충 등 공동체적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온전히 치유할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뇌척수애개에서 발견되는 신경대사물질로 뇌를 순환하며 신경 전달 기능을 합니다. 세로토닌은 감정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 물질이 부족한 경우 감정이 불안정하여 근심과 걱정이 많아지고 충동적인 성향이 나타난다고 과학자들은 밝혔습니다.

현재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약에는 세로토닌이 재흡수 되는 것을 막아 뇌속에 더 오랫동안 머물도록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멜라토닌은 인체의 생체시계 역할을 하는 호르몬 입니다 수면과 관련되어 부족할 경우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며 수면욕 외에도 식욕 성욕등 생리 기능에 관여학 때문에 부족할 경우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도파민,세로토닌, 네르에피네프린 들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일어나고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약리학적, 병리학적 요인등이 이러한 불균형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2배 정도 많이 나타납니다.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성은 세로토닌 농도가 조금만 변해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월경주기를 전후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등 여성 호르몬의 불균형이 뇌를 자극하여 세로토닌에 변화를 주기 때문입니다.

어릴적 당한 사고, 폭행, 학대 등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는 이루 성장하면서 우울증으로 발전될 확률이 8~10배정도 높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시 인간의 뇌는 단백질의 손상이 일어나며 이를 신경영양인자를 통해 치료하지만 정작 깊은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선 신경영양인자의 양이 정상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발병률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성격이나 인지체계를 가지고 있는경우에도 상대적으로 발병률이 높습니다. 또한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에도 발병률이 높습니다.

또한 고혈압제, 항불안제, 마약, 중추신경흥분제 등과 같은 약물 복용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경우에도 우울증이 발병한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내가 가진 목표보다 이룬 것이 많을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자신의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작은 성위 습관이 만족을 주어 주변의 비판에도 자존감 시스템이 안정을 유지하여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저소득 취약계층에서 발병률이 높습니다.

또한 의외의 경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올라간 상태에서 뒤쳐지거나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에 압박감을 느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울증의 전조증상은 우울감, 무기력감, 불안, 흥미의 저하, 식욕장애, 수면장애( 불면증 혹은 과수면증), 자결생각등이 주요 증상입니다.

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 등이 있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체중변화가 심각한 정도이거나 행동이 둔하고 느려지며 만성피로감을 겪기도 합니다.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체증상으로는 두통, 소화불량, 목과 어깨결림, 가슴답답함 등의 증상도 일어납니다.

심한 우울증의 경우 망상이나 환각 조현병 증상까지 동반하기도 합니다.


우울증의 진단

거의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이 거의 매일 이어집니다. 모든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 감소된 상태가 거의 매일 이어지며 체중또는 식용의 심한 감소나 증가가 이루어지며 거의 매일 반복되는 불면이나 과수면 상태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평소보다 느려지거나,초조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매일 반복되는 피로감 활력 상실, 무가치함, 지나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 사고력 또는 집중력 감퇴, 결정을 못내리는 우유부단함이 거의 매일 지속됩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되풀이되어 떠오르거나, 특정한 계획이 업는 자살 사고가 반복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구체적인 자살계획을 세웁니다.

약물 등의 섭취, 물질이나 질병으로 야기된 효과는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없습니다.


우울증의 치료방법

우울증은 80~90%가 치료되며 관리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우울증 치료의 첫 관문입니다. 

치료 방법으로는 약물치료, 정신치료 등이 있고 초기에 병원을 찾는 환자일 수록 회복하기 쉽습니다. 우울증 초기 환자는 약물치료 없이 상담만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증이상일 경우 약물치료를 실시합니다. 

우울증은 뇌 질환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항우울제는 빠르면 2주 ~ 4주, 일반적으로는 2개월 정도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항우울제에 대한 의존성은 적으며 정신과 의사들이 약물에 중독되지 않게 처방하며 대신 중단할 경우 재발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 치료시 6~12개월 약을 복용하는데 중단했다가 다시 복용하면 2~3년이 걸립니다. 충분한 약물치료가 진행되고 나면 해마 크기가 정상화 되기 띠문에 완치후에는 다시 약물을 복용한 필요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철학의 제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 등에 의해 '신성모독죄'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당하고 기원전 399년 71세의 나이로 사약을 마셔 사형을 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공자, 예수, 석가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리며,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의 저서 위대한 사상가들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철학은 플라톤, 플라톤은 철학 이란 평가를 받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수제자 입니다.
플라톤이 20대인 시절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의해 끝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했으며, 이는 그의 귀족주의 지지의 큰 계기가 되었읍니다.

알렉산더대왕은 소크라테스의 증손제자로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스승인 플라톤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습니다.

플라톤에 따른면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인 소프로니코스를 아버지로 두고, 해산술을 했던 어머니밑에  아테네의 서민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조각을 하며 다른 청년들처럼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배웠고,
중장보병에 편입되어 세번이나 전투에 참가했으며,
40세 이후에는 교육자로 청년들의 교화에 힘썼습니다.

그는 자연 철학을 배웠지만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이때는 아테네의 몰락기였으므로 보수적, 귀족적인 정신과 진보전 개인주의적 비판적 정신이 소용돌이 치는 시기였습니다. 그도 그러한 경향을 지니게 되었으나 당시에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으로 진리를 상대적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 절제, 용기, 경건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화를 끼쳤지만,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 등의 출현이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 라는 죄명으로 고소되고 배심원의 투표 결과 40표로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그는 도주할 수 있었지만 태연히 독배를 들어 마시면서 자신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빚졌다며 대신 갚아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으로 그의 신전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닭을 댓가로 바쳐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

아무런 저서도 남긴바 없는 소크라테스의 확실한 사상을 알기는 어려우나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라이르티우스, 크세노폰, 특히 플라톤의 저서에 언급된 것을 보면 델피의 신탁인 '만인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무지를 자처하던 소크라테스는 신의 신탁이 사실인가 확인하기 위해 의아심을 품고 여러 현인들을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하던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장인이 아레테(훌륭함 탁월함)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기술에 대해 잘 알아야 하듯 인간으로서의 아레테, 즉 덕을 발휘하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제논의 변증법에 활용하여 논변을 진행시키는 사이에 잘못된 판단의 모순을 깨우치고 다시금 옳은 판단으로 유도시켰는데 이것이 유명한 산파술 입니다.

그는 합리주의자였으나, 때로는 초경험적인 내심의 소리, 즉 다이몬의 소리를 경청하고, 때로는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다이몬은 일종의 귀신입니다)

덕은 인간에 내재한다고 믿고 사람들에게 이를 깨닫게 하기위해 온갖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함을 일깨워주고 용기나 정의등에 관한 윤리상의 개념을 설교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지않고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인정하지 않는 부당한 고발을 당해 사약을 마시게 되었지만 그의 탁월한 지적, 도덕적 성격에 의해 비단 철학자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켜 '인류 최대의 교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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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심적외상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충격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증후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트라우마라고도 합니다.

주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에서 벗어난 사건들, 이를테면 천재지변이나 화재 전쟁 신체적폭행 고문 강간 성폭행 인질사건 소아학대 자동차나 비행기등의 사고 그 밖의 대형사고를 겪은 뒤에 발생합니다.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개인마다 다릅니다. 충격후 즉시 시작될 수도 있고 수일 또는 수주일 수개월 수년이 지나고 나서도 증상이 나타날수 있으며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어야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고, 증상이 한달안에 일어나고 지속기간이 3개월 미만일 경우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속합니다.

증상

증상은 과민반응과 충격의 재경험 감정 회피 또는 마비로 나타나게 됩니다. 과민 반응은 쉽게 깜짝 놀라고 불안해하며 잠을 자지 못하며 집중이 어려운 증상이 나타납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의 경우 항상 벽쪽에 등을 대고 있고 강간을 당한 사람의경우는 범인이 있는것처럼 경계를 합니다. 충격의 재경험증상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꿈 환각이 재현되어 실제와 같이 느끼고 신체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기억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신체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감정회피또는 마비증상은 정상적인 감정이 없어지는것을 뜻합니다. 비현실적인 감정만 들기때문에 분노 피해의식 수치심이 들게 됩니다.

두통이나 소화불량 구토 위통 수전증 호르몬변화에 따른 알레르기와 같은 현상도 생기고 화장실에서 배변이 어려워지며 이별 불안 학교공포 외부인 공포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감정들때문에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여 남용 및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고 자율신경계장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환각이 보이고 해리성 장애나 공황 발작이 나타나기도 하며 어린 나이일 경우에는 경험에 대한 꿈이 아니라 귀신에 대한 꿈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

한 개인이 실제적인 죽음니아 죽음의 위협에 대한 사건들 또는 심한 부상이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으로 위협을 경험했거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한 경우입니다.

외상적 사건은 영상, 사고들을 포함하는 사건에 대해 반복적이고 고통스럽게 회상하게 됩니다. 그 일에 대해 반복되는 꿈을 꾸거나 외상적인 사건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외상적인 사건의 일면과 유사하거나 상징하는 어떠한 단서를 접했을때 강한 심리적 고통을 동반하거나 생리적 반응을 동반하게 됩니다.

외상과 관련된 사고, 느낌 혹은 대화를 피하려하고 외상에 대한 회사을 일으키는 활동들 장소 혹은 사람을 피하려는 노력, 외상의 중요한 측면을 회상할 수 없고, 중요한 활동에 흥미를 잃거나 참여가 줄어들며 다른사람들에서 동떨어지거나 격리된 느낌을 가지며 감정의 범위가 제한(예를 들어 사랑이란 느낌을 가질수 없슴)되고, 직업 결혼 자녀 또는 정상적 수명에 기대하지 않습니다

증가된 각성으로 인해 잠을 청할 수 없거나 잠이 들어도 수면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며, 흥분성이 증가하거나 분노의 표출이 증가하고 과도하게 놀람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장애의 기간은 한달이상 지속되면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진단하게 됩니다. 

이 장애는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들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고통이나 장애를 일으키며 호르몬 변화로 인한 생리적, 임상적 현상(두통, 식욕부진, 소화불량, 피부병)이 다양하게 발생합니다.

급성스트레스 장애의 진단


한 개인이 실제적인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또는 심한 부상, 자신과 다른사람의 신체적으로 위협을 경험하고 목격하고 직접 겪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 강한 두려움, 무력감, 혹은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거나 그후에는 감정 반응이 둔화 되거나 이탈 혹은 무반응입니다. 주위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며 비현실감, 이인증, 또는 해리성 기억상실등의 증상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영상들 ,생각들, 꿈, 착각, 플래쉬 백 또는 경험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나 외상적 사건을 회상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때의 공포감이 있습니다.

또 외상을 회상시키는 자극을 과도하게 회피하게 됩니다.

잠을 이룰수 없으며, 짜증을 잘내고, 집중력 장애와 과도한 주위 탐색, 증가된 놀람 반응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가 사회적, 직업적 혹은 기능이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고통 혹은 손상을 일으키고 혹은 개인이 가족들에게 외상적 경험을 이야기 함으로써 조력을 구하거나 개인적인 자원을 동원하는것같은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개인의 능력이 손상됩니다.

증상은 최소 2일이상 최장 4주간 지속되고 사고후 4주 이내 시작됩니다.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경우는 치료를 시작하면 회복이 매우 빠른편이고 정신과적 장애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과적 장애가 나타나거나 원래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만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신과적인 치료는 사고 후 몇주안에 시작해야 하며 인지치료 행동치료 최면치료 집단치료 약물치료 신경차단 치료요법 등이 있습니다. 

약물은 삼환계 항우울제와 단가아민 산화효소 억제재,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같은 항우울제나 항경련제를 복용합니다.


신경증은 정신병을 나누는 분류중 하나로 노이로제라고도 불립니다.  현실 판단력에 문제가 없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는데 큰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추신경이나 신경전달물질 등의 장애로 여러가지 불편함을 느끼거나, 감정조절과 충동조걸이 힘들고 불안감이 드는 증상이 있습니다.

정신병은 정신증과 신경증으로 나눕니다.  

정신증과 신경증의 분리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경증은 정신적 이상보다 신경계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장애가 원인이라고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서 분리의 필여성이 생겼습니다.

신경증의 치료는 증상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분석하는 상담치료나 해당 신경물질을 활성화시키거나 억제, 조절하는 약물치료를 주로합니다. 

호르몬 분배이상이나 늑정 수용체의 장애가 원인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치로 돌아올 때 까지 오랜기간 약물투여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대분분의 증상은 얄물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완화되어 정상인들과 같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단기적인 증상 완화이기 때문에 약물없이도 정상생활이 가증할 때까지 약물치료를 받아야하면 그 기간은 최소 1년여의 시간동안 장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짧은 기간덩안 증상이 사라졌다고 임의대로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증상이 금방 돌아옵니다.


신경증 노이로제 증상이 있는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은 습관이 아니라 병증이라 할 수있습니다. 해당질병의 증상을 하기싫어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인식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런 행동이 자기의 의지대로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의사들은 이런 태도를 부정합니다. 신경증은 뇌 안의 신경전달 물질의 문제이므로 약물치료만이 답입니다. 신경증 노이로제가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뇌 속의 화학 작용으로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일반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노이로제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스트레스를 매우 심하게 느껴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심한 피해의식을 시달리고 있는 신경증 환자에게는 이런 발언에 매우 민감해하며 분노와 복수심을 가지게 되며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일부 신경증 환자들은 그 말을 믿고 질병을 방치하여 증상이 더 심해져 만성화되거나, 화병 맻 신체화 장애라는 문제를 안고가게 되거나,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악화되기도 합니다. 애초에 질병의 증상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만으로 개선될 수 없습니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며 신경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없게 됩니다. 이 스트레스 때문에 뇌는 자기보호를 위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망상을 현실로 받아들여 안정감을 얻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망상과 현실을 구별할지 못하는 정신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경우 도박중독이나 알콜중독등 각종 중독에 노출되며 최악의 경우 총기난사 사건 같은 범죄나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정신과적 질병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인 치매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편견이 심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의 노인 공경사상과 노인자체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치매의 경우 다른 정신과 질환들과는 달이 영상의학적 검사로 발견되어 다른 신경증에 비해 질병이라는 인식이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에서 방치되어 실종되거나 망상을 느끼거나 헛것이 보인다거나 지능이 감퇴되는등 증상이 정신질환중에서 최고라는 점에서 이 질병이 다른 신경증보다 상대적으로 좋다거나 만만한 질병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질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치매라는 신경증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않습니다. 

영국과 일본에서는 신경증 환자들이 굳이 정신병원에 갈 필요없이 정신건강센터에서 치료를 받을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신경증 환자들이 일본처럼 정신과 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에서도 진료를 받을수 있거나 심리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신과의 강한 반발로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자기애나 자아도취를 뜻합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에서 유래된 말로, 외모나 능력 등을 들어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여기는 증상입니다. 이러한 증상을 가진 인물은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릅니다.

나르시시즘은  여러모로 다른 사람에게 심적인 피해를 주고 반사회성 성질을 갖고 있어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분류됩니다.  자기애가 좀 지나쳐서 표출되는 정도는 약한 것에서부터 흔히 왕자병, 공주병으로 불리며 애교스러운 정도와 허영심의 과다로 타인에게 반감을 사게됩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가리는 리더가 됩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단점은 없고 다재다능해 보이기 때문에 리더십을 잘못 알고 있으면 그런 사람 밑에서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당할수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이상적인 리더로 비춰지는 이유는 그들이 결과를 얻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한정도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분류될 수도 있는 스티브 잡스도 그 예입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 나르시시스트들은 실제로도 결과에 기여되는 경향이 있으며 목적이 있으면 조직의 창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르시시스트가 좋지않은 리더라는 의견이 다분합니다.

실제 IT업계의 CEO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이  있는 CEO들은 다른 CEO에 비해 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하며 들쑥날쑥했고 딱히 다른 CEO에 비해 나은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리더는  조직 내의 정보공유를 방해하며 조직의 조직의 성과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평가와는 달리 나르시시스트들의 창의성은 높지않으며 단지 생색을 잘내며 타인의 의견을 자주 묵살하고 탈취하기  때문에 조직에 나르시시스트가 많으면 조직의 창의성이 떨어지게 되고 조직원들이 사기가 떨어지며 조직 자체가 서로 문제를 가리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이 힘들어 협력할 수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들이 창의적이고 좋은 리더처럼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그들이 이미지관리가 철저하고, 좋은 단어들을 유리하게 쓰며, 화려한 언변능력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에 유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상, 창의적인 사람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들의 첫 이미지는 완벽하고 단점이 없으며 대단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역하거나 그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리학계에  중요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회사원들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를 뺏긴 사례도 있었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에으로 심적  고통을 겪으며 실제 나르시시스트들과 지낸 사람들 역시 노이로제 트라우마에 앓았다고 합니다.

나르시시즘은 도덕적으로 노력과 깨달음과 자성을 무서워하게 되는 욕심만 많은 미성숙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 잘 사용하면  이롭게 쓸 수 있지만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그 회사나 기업에 제대로  된 리더십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나르시시스트 들로 인해 '독점'과 '권의주의'가 일어나 상호간의 소통이 힘들며 공동체 자체의 문제 의식과 위기 대처에 문제가 생기며 스트레스가 상승합니다.

알려진것과는 달리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닌 자기혐오에 가까운데 그 이유누 진짜 자신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신의 이미지 (페르소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덕성이 자라기 힘들고 거짓말을 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도덕이나 배려, 신뢰, 공감, 양심을 지켜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단지 다른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깨는것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며,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입니다.

보여지는 이미지는 이미지는 자신감이 넘쳐보이지만 심리학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없는 상태라 비판을 수용할 수 없으며, 토의 토론등 문제해결을 위해 의견을 나누는것이 힘듭니다.

여기까지 나르시시즘에 관한 설명이었습니다.

출처는 위키 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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